다른 주요 만성질환도 마찬가지지만 통풍도 유전에 의해 촉발될 수 있는지에 대한 많은 연구가 진행되어 왔습니다. 레쉬-니한 증후군(Lesch-Nyhan syndrome)이나 켈리-시그밀러(Kelly Seegmiller syndrome) 증후군처럼 신장으로 요산을 배출하는 효소 중 하나가 결핍되거나 효소의 생산량이 아주 적을 경우 요산 수치가 증가하는 선천적인 질환이 있습니다.
이렇게 뚜렷한 유전적인 요인이 있을 경우 통풍을 피하기가 힘들지만 일반적으로 통풍은 당뇨병이나 알레르기 질환만큼 유전과의 관련성이 크지 않습니다. 연구에 따라 다소 다르지만 대략 18퍼센트 정도의 통풍 환자가 가족력을 보인다고 하지요. 일반인들은 통풍 발병에 있어서 유전적 요인이 훨씬 더 크다고 생각하지만 유전은 일부에게만 해당되며 식습관 등 다른 요인이 훨씬 더 중요합니다.
문제가 있는 유전자에 좋지 않은 생활방식과 식습관 등 여러 가지 요인이 더해질 때 통풍이 발병하게 됩니다. 바꿔 말하면 통풍을 유발하는 유전자가 있다고 해도 좋은 식습관과 생활습관을 유지한다면 통풍에 걸리지 않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통풍과 관련이 깊은 유전자로는 URAT1, SLC2A9 등이 있는데 신장에서 요산을 운반하는 단백질 수준을 결정합니다. 요산을 밖으로 내보내는 운반체인 특정 단백질의 양이 적으면 당연히 배출이 잘 되지 않겠지요.
미국의 피마 인디언이 세계에서 가장 높은 당뇨병 발병률로 유명하지만 뉴질랜드 원주민인 마오리족은 통풍에 가장 취약한 종족입니다. 성인의 10퍼센트, 성인 남성만 계산하면 발병률이 무려 20퍼센트에 근접합니다.
약 천 년 전쯤에 남태평양 군도에서 뉴질랜드 이주한 마오리족은 대만 원주민의 후손입니다. 대만의 원주민도 아시아에서 통풍 발병률이 가장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어서 이들에게는 통풍에 잘 걸리는 유전자가 있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마오리족은 고기를 즐기는 뉴질랜드 백인과 달리 해산물을 아주 좋아합니다. 퓨린이 통풍을 유발한다고 믿는 퓨린 옹호론자들은 초록입홍합 같은 해산물에 많이 포함된 퓨린 때문에 마오리족이 통풍을 많이 앓는다고 주장할 것입니다. 하지만 1800년대 후반에 영국 이민자들이 물밀듯이 밀려들어 온 후에도 그들은 자신만의 식사법을 고수하였고 식습관이 서구화되기 전까지는 통풍이 전혀 없었습니다. 하지만 1940년대에 들어오면서 마침내 술을 마시고 서구식 식사를 시작하면서 통풍이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즉 퓨린이 많이 든 식사와 통풍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었던 것이지요.
뉴질랜드를 처음 발견한 쿡(Cook) 선장과 함께 항해를 하면서 마오리족에 대한 기록을 자세히 남긴 의사이자 과학자인 조셉 뱅크스(Joseph Banks)는 당시 그들을 어떻게 보았을까요? 1747년 해군외과의 제임스 린드(James Lind)가 괴혈병 예방법을 찾아낸 후 정말 항해 중에 과일을 먹으면 괴혈병이 방지되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처음으로 라임주스를 잔뜩 싣고 항해에 나섰습니다. 참고로 비타민C는 1912년에야 발견이 되었습니다.
조셉의 기록에 따르면 그들이 처음 접한 마오리족은 대단히 마르고 강건하며 질병의 흔적이라고는 전혀 없는 그야말로 최고의 인종이라고 격찬을 합니다. 세계 1위의 럭비 팀인 올블랙(All Blacks)의 주축 멤버인 마오리들을 보면 이 말이 전혀 틀리지 않았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당시 그들의 식사는 고구마, 타로, 고사리나무 뿌리, 야생 과일과 채소, 야생 아마 나무에서 채취한 오일, 생선, 새, 달걀이었습니다. 알코올, 곡물, 고기, 유제품은 전혀 없었지요. 또 조리법도 나뭇잎에 말아서 땅에 뭍은 항아리에서 찌는 형태였습니다. 1850년대에 영국 이민자들이 곡물이나 가축을 들여왔으나 마오리족은 자신들의 식습관 유지했습니다. 이때까지는 비록 유전적으로는 통풍에 취약했지만 환자는 전혀 발생하지 않았었지요.
하지만 점차 서구화된 식사법이 도입되고 술을 마시며 굽는 조리법에 적색육을 즐기고 야채가 거의 없는 가공 탄수화물 등을 섭취하면서 환자가 급증하여 마침내 세계 1위의 통풍 발병률이라는 불명예를 갖게 되었습니다. 마오리족의 예를 보면 유전적인 성향이 있을 때 서구식 식사에 노출되면 급격히 통풍이 발병됨을 알 수 있습니다. 필리핀인들 역시 유전적으로 통풍에 취약한데 미국에 이주하여 미국식 식사를 하게 되면 본국에 있을 때보다 발병률이 훨씬 높아집니다. 아시아에서 가장 통풍 발병률이 높은 민족은 타이완 원주민으로 마오리 족도 이들의 후손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유전자 검사 비용이 파격적으로 낮아짐에 따라 통풍 환자도 유전자 검사에 관심을 많이 갖게 되었습니다. 최근 통풍과 아주 강력하게 관련된 유전자는 3개 임이 확인되었습니다. 연구조사에 따르면 세 개 모두를 가진 사람은 하나도 없는 사람에 비해 통풍 발병가능성은 무려 40배에 달한다고 합니다.
안젤리나 졸리가 유방암 유전자 검사를 해서 유방과 난소 제거수술을 받은 것처럼 통풍 발병 가능성이 높은 사람에게 통풍을 예방한다면서 유전자 검사 후 선제적으로 부작용이 심한 약을 처방할 우려도 있습니다. 여러 번 지적했듯이 통풍도 분명히 유전과 관련이 있지만 좋은 식습관과 생활습관을 통해 얼마든지 예방과 치유가 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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